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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요한 칼럼 00] 계속 몰락하는 한국 교단들

기사승인 2019.10.07  14:3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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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장백석 ‘만신창이’, 예장고신 가파른 몰락, 예장합신 정이철 신학검증

지난 9월2일에 시작된 예장 백석 교단의 총회를 시작으로 한국 5개 장로교단의 가을 총회가 지난 26일에 막을 내렸다.

 

   

▲2019년 장로교단 가을총회 모습.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이 없음. CBS화면 캡처


교세가 일제히 하락

 

각 교단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장로교단은 물론 타 교단도 매년 교세가 꾸준히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한국 교단의 교세가 꾸준히 하락할까? 어떤 사람은 교회 학교 감소와 인구 절벽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명성교회 세습 스캔들, 지나친 이단(성) 정죄, 윤리도덕적 각종 스캔들로 인해 불신자의 종교선호도가 불교, 천주교에 이어 꼴찌인 상태가 교세 감소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돈, 섹스, 권력은 세상은 물론 기독교계에서도 뜨거운 감자인데 회개와 품성의 종교인 개신교가 오히려 이런 것들로 많은 스캔들을 일으키다 보니 세상의 조롱이나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500년 전에 개혁된 개신교회가 개혁되기는커녕 아직도 잘못된 칼뱅주의 예정론에 의한 한번 구원 영원한 구원론과 기적중지론이란 가짜 신학에 천착하고 있으니 한국 교회는 개신교회가 몰락한 유럽교회나 교세가 전체 개신교의 0.5% 수준으로 쇠락한 미국 보수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 장로교회는 성장하고 있는 은사적 교회를 교단 차원에서 벤치마킹 하기는커녕 아직도 대적하고 있다. 교단 차원에서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교세 확장의 대안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안을 당차게 추진해 나갈 용기 있는 사람들이 교단에 적기 때문이다. 그나마 외부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은사적 교회의 장점을 취사선택하여 적용하는 교회들이 각 교단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장 백석의 ‘만신창이’가 된 처참한 몰골

 

「글로리아타임스」의 은사사역 변호와 주장을 비판하면서 참여금지를 결의한 예장 백석의 한 해를 표현하는 단어는 '만신창이'라 할 수 있다.


국어사전을 보니 '만신창이'는
1.어떤 충격이나 실패 따위로 마음이 심히 상하여 모든 의욕을 잃은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온몸이 제대로 성한 데가 없을 만큼 여러 군데를 다친 상태,
3. 일이 아주 엉망이 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예장 백석과 대신의 통합이 불법이라는 고등법원의 판결이 나자 600개 정도의 교회가 대신으로 복귀했고, 잔류한 대신파들과 백석파 사이에 분란이 일고 서로 정죄하는 내홍이 일어나서 예장 백석과 예장 백석대신으로 갈라지고, 예장 대신 복원총회(대표 전광훈 목사)와 날 센 공방을 벌이다가 통합을 주도한 전광훈 목사를 면직하여 명예훼손죄를 유발하기도 했다.
 

필자가 예측한 이상의 분열과 내홍으로 인해 예장 백석은 통합이 아니라 분열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한때의 동지들이 이제 원수가 되어버렸다.

 

예장 백석의 한 해는 어줍잖게 덩치를 내세우면서 하나님의 은사사역을 대적하는 자들의 말로가 어떠한지를 똑똑히 보여준 사례가 되어버렸다. 얼마나 교세가 몰락했는지 총회 홈피에는 지난 해의 잘나갔던 교세가 아직도 게시되어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사사역을 대적하는 예장 백석을 시험 케이스로 삼아서 본 때를 보이시는 것 같다. 개과천선해도 시원찮은 판에 신학 함량 미달의 김정만을 이대위위원장으로 내세워서 골수 기적중지론자인 정이철, 김재성이승구 등과 교류하면서 성령의 불을 끄고 있으니 하나님이 교단에 징계의 회초리를 드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이 방언이나 중보기도 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참여금지를 결의해놓고 교단 대표인 장종현은 백석대 총장 자격으로 방언을 적극 주창하는 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의 출판 기념회(2019년1월3일), 중보기도를 적극 교육하는 예장 합동 소속 사랑의교회 위임식(2019년3월20일) 및 국가조찬 중보기도모임에 참여하는(2019년5월14일) 위선적 이중성을 보였다.

 

장종현이 가을 총회를 계기로 초헌법적 권한을 위임 받은 총회장이 되어 칼자루를 휘두를 것을 생각하니 하나님이 회초리를 금방 거두실 것 같지가 않다. 교단이 살려면 은사사역을 비난하고 대적한 잘못된 결의부터 먼저 철회해야 할 것이다.


예장 고신의 꾸준하고 가파른 몰락

 

은사사역을 노골적으로 대적하는 예장 고신의 교세는 더 큰 폭으로 가파르게 몰락하고 있다. 47만3,497명(+1483명. 2017년 통계)→45만2,932명(-1만9,568명. 2018년 통계)→42만3,245명(-2만9,687명. 2019년 통계)이다.

 

본지의 '예장 고신 이단적 결의'로 충격을 받았는지 바로 직후에 「국민일보」에 명함도 잘 내밀지 않던 예장 고신측 사람들이 기사나 글을 쓰면서 정통성을 인정받으려는 유치한 행각도 보였다.
 

정이철 무리들이 이단 몰이를 했던 김요한의 『지렁이의 기도』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만일 김요한도 필자처럼 예장 고신을 이단적 교단으로 결의했다면 인터넷 시대인 요즈음 예장 고신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장 고신이 정통 행세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이제는 예장 고신이 오히려 신학 검증 대상이 되어야 할 시대가 되었다. 칼뱅의 예정론에 기초한 한번 구원 영원한 구원론과 기적중지론에 심각한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칼뱅의 예정론과 구원론이 맞는다면 왜 유럽교회가 몰락하고 미국의 보수장로교회 및 개혁교회가 몰락하는가? 하나님에 의해 예정되고 선택받은 자만 구원 받는다면 유럽 교회가 왕성할 때는 예정된 자가 많았고 지금은 예정된 자가 급감했기 때문인가?

 

한국 교회가 1990년 초까지 급성장한 것은 당시까지는 예정된 자가 많았지만 이후 답보상태에서 하락하기 시작한 것은 예정된 자가 줄었기 때문인가? 미국에서 보수 장로교인은 줄어들고 은사적 교인은 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구원 받기로 예정된 자가 모두 은사적 교회로 몰려간 탓인가?

 

칼뱅의 예정론과 기적중지론이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래도 잘못된 예정론과 기적중지론을 붙잡고 정통 행세를 할 것인가? 필자의 이 주장은 칼뱅의 예정론과 기적중지론을 고수하는 모든 교단이나 신학자와 목회자 및 성도에도 적용될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성찰을 촉구한다.

첫째, 가짜 신학으로 더 이상 정통 행세를 하지 말기를 바란다.
둘째, 교세가 성장하기를 바라면 2대 가짜 신학을 하루라도 빨리 청산하기 바란다.

 

예장 합신의 정이철 신학 검증

 

종횡무진 천방지축으로 이단 몰이에 앞장 서던 정이철도 합신의 레이더망에 걸려 결국 신학 검증의 대상이 되었다.

 

칼뱅주의 2대 신학적 오류인 예정론에 근거한 한번 구원 영원한 구원론과 기적중지론에 천착하는 큰 가짜인 주제에 천방지축으로 다른 사람들을 가짜로 몰아가던 정이철이 이번에는 임자를 제대로 만난 것 같다.

 

여러 사람을 탈탈 털고 찔러서 신앙 검증 대상이 되게 한 것을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자축하다가, 막상 자신이 신학 검증 대상이 되니까 고양이 앞의 쥐처럼 꼬리를 내리면서 "합신의 어른 목사님들께 올립니다"는 비굴한 제목으로 서철원 박사를 방패막이로 내세우면서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정이철의 말처럼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정이철이 합신의 신학 검증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인가?

 

개혁주의 신학의 알맹이는 언약신학일 정도로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이 중요한 데, 정이철은 서철원의 주장에 편승하여 행위언약과 예수의 능동적 순종을 부인하면서 종횡무진 천방지축으로 여러 사람을 비판하다가 합신과 부딪쳐서 결국 합신의 신학검증 대상이 되었다.


개혁신학에서 언약신학을 부인하면 원죄 교리도 흔들린다. 아담의 한 범죄가 인류 모두의 범죄가 되는 이유는 아담이 인류의 ‘생물학적 시조’임은 물론 ‘언약의 시조’이기 때문이다.

 

아담이 인류의 언약적 대표이기 때문에 아담의 한 범죄만 그를 통해 태어난 모든 인류에게 전가된다는 것이 원죄 교리이다. 아담이 언약의 대표임을 부인하는 아르미니안주의나 자유주의는 사람은 원죄가 아니라 각자의 죄로 인해 심판 받는다고 주장한다.

 

물론 칼뱅도 언약이나 원죄에 대해 언급했지만 이후 개발된 언약신학에 기초하여 오늘날 개혁주의가 주창하는 원죄 교리가 제대로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이철은 이전에 은사적 성향의 합동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을 무례하게 비판했다가 합동 노회의 신학 검증 헌의를 받았지만 합동에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서철원의 빽(?)으로 구제를 받았었다. 그러나 이제 합동에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합신의 레이다에 걸린 상태이므로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

 

칼뱅의 원론적 주장을 강조하는 정이철과 칼뱅의 주장을 일부 수정하는 칼뱅주의 입장인 예장 합신이 같은 칼뱅주의이면서도 서로 다른 주장을 어떻게 타결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나가는 말

 

이 세상에서 신학적으로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날의 엄격한 신학 잣대로 평가하면 연옥론을 주창한 어거스틴도 이단이다. 어거스틴은 전기에는 사람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구원론을 주장했다가 후기에는 절대 예정론으로 돌아섰다. 어거스틴은 전기에는 기적중지론자(은사중단론자)였지만 후기에는 기적계속론자(은사지속론자)로 돌아섰다.

 

그런데 칼뱅은 구원론은 어거스틴의 절대 예정론, 은사론은 어거스틴의 기적중지론을 받아들여서 이런 잘못된 신학이500년간 개신교를 지배해 왔다. 그런데 칼뱅의 이 두 가지 핵심교리가 지금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칼뱅의 이 두 가지 교리를 견지해 온 보수 장로교회와 개혁교회가 유럽은 물론 북미주(미국과 캐나다)에서 전멸 수준으로 몰락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류 교단인 장로교단 중에서도 이 두 가지 교리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교회들은 몰락해가고 있다.

 

해답이 있는데도 한국 교회가 왜 자구책을 내지 못하고 있을까? 교단 내에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기 있는 자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내부에서 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외부의 충격을 통해서도 원하시는 개혁을 이루어 내실 것이다. *

 

 

 

 

 

구요한 발행인 lifech067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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